아 진짜 이렇게 뻔하고 식상한 제목을 달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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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사실 고되다.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연상태에 내던져졌던 원시인마냥 기본적인 삶을 위해 여러가지를 견디고 극복하고 살아야 한다. 물론 이제는 추위와 비바람과, 그리고 자연재해나 맹수들로부터 몸을 지켜야 하는건 아니지만 (아 아직도 추위와 비바람, 자연재해는 여전할지도 모르겠구나. 뭐야 쓰고나니 별로 안변했잖아.)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 내몸 하나 누울 공간을위해 일을 해야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포유류는 욕심이 참 많아서 등따시고 배가 부르면 그 후에 다른 욕망이 스물스물 생기더라. 작게는 차도 갖고 싶고 가방도 사고 싶고, 조금더 편하게 몸뚱이 보전하고 싶기도 하고, 종족 번식도 더 효율적으로 하고 싶으며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나 미래에 이바지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1차원적인 욕구 이후의 문제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어서 그걸 위해 자신을 희생시켜야만 하는 상황, 즉 1차원적인 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쉬운 예로 먹고 살자고, 그러니까 1차원 적인 욕구라도 좀 해소하자고 일을 하는데 하다보면 바빠서 잠도 못자고 끼니도 거르는 상황 말이다. 물론 자신의 예술가적인 혼을 불살라 조금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조금더 좋은 노래를 쓰려는 사람들의 욕구도 마찬가지려니와 환경을 보존하겠다고, 인권을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역시 밥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 종종 마주친다.

그러다보면 일단 배는 고프고 먹고살기는 해야하기에 당장 돈되는, 그러니까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하게 된다. 왜 쉽게 그려지는 그런거 있잖아. 가난한 뮤지션들이 식당에서 알바하는 그런 알기쉬운 예.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아까 말한대로 원시시대와 마찬가지로 21세기의 인간사회라는곳도 삶을 보전하는게 그리 만만치 않다는거지. 어른들이 그러잖아? 남의돈 먹기가 쉬운줄 아냐고. 그렇다. 나는 정말 음악을 하고 싶은데 음악으로는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서 일단 일을 구해서 하는데 그러다보니 일이 너무 빡시고 힘들어서 정작 음악을 못하게 되는. 이걸 단지 열정이 부족하다더니 뭐 이런말로 치부하기가 어려운게 실제로 인간의 능력이나 체력에 분명 한계라는선은 존재할테고,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한숨도 안자고, 한끼도 안먹고 할만큼 사람의 체력이 무궁하지는 않잖은가. 게다가 시간도 무궁한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고 마음은 초조해지고 또다시 시간이 간다는걸 느끼고.

그러다보면 원래 내가 하려했던게 뭘까. 1차원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걸로 감사해야 하는것일까. 게다가 월급날이 되니 심지어 기분도 좋네? 이런게 삶이지 뭐. 라는 순환에 빠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물론 자신의 원대한 꿈이 1차원적인 욕구의 해소, 돈으로 대부분 해결 가능한것들 이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런 순환에 빠지는것은 매우 위험하다.

당장의 은행 잔고가 신경쓰이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나에게 있다는걸 깨닫고, 상기하고 정 안되겠으면 어디다 적어두던지 해야겠다. 이런일이 주변에서 너무나도 흔하게 보여서 약간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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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좀 다른 이야기 인데, 한국에다가 돈을 부치는데 우리은행 모바일 뱅킹을 이용해 왔다. 헌데 이 망할놈의 공인인증서라는 놈이 만료되버린 까닭에 몇년전에 깔아뒀는지 기억도 안나는 vmware를 켜고 windonws xp 를 다운받아 설치한 후 우리은행에 들어가기 위해 언어팩을 설치하고 빌어먹을 active x고 뭐고 닥치는대로 깔고 있다. 아니 심지어 내가 기꺼이 깔겠다는데도 그 보안프로그램이 인증되지 않은 위험할 수 있는 보안프로그램이라 윈도우가 거부하기에 링크타고가서 루트 인증서라는놈을 수동으로 다운받아 설치하고 다시 보안프로그램 깔고 인증서를 받는 중이다. 게다가 아직 그 인증서를 아이폰으로 옮겨야하는 과정이 남아있으며 여기까지만 했는데도 ‘아 앞으로 윈도우를 몇번만 더 껐다키면 될까.’ 하는 생각과 ‘과연 오늘중으로 한국에 돈을 부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걸 보니 역시 최종목적을 위해 과정이 때대로 이렇게 험난하구나 라며 이 글에 덧붙이게 된다.

지난주였다. 일끝나고 집에 가려고 칼을 챙기는데 boning knife 가 하나 없어졌다. 제길! 새로산거란 말이다! 게다가 이미 약 한달전에 칼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려 칼도 몇자루 없는데다가 지금 일하는데가 meat section 이라서 boning knife 는 진짜 하루라도 없으면 일하기가 아주 지랄이다. 아아아. 다행히 다음날이 휴일. 바로 또 샀다. 산지 일주일 만에. 병신같이 어따 흘렸는지 기억도 못하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리고는 휴일 다음날 일하러 갔더니. 이게 웬걸 hot larder section 애새끼들이 보관하고 있더라. 그거 왜 거기가있는거니. 뭐 어쨌던 찾은 기쁨이 더 컸기에 그냥 좋아라 하고 퇴근 했다.

혹시 이런일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새로산칼을 안뜯고 영수증도 잘 보관하고 있길 잘했지. ㅋㅋㅋ 하고는 다음 쉬는날에 바로 백화점으로 다시 갔다. 그래 급해서 백화점에서 샀다. 아니 게다가 세일이었다구! (가게에서 칼 백화점에서 산다고 놀림받았거든) 아무튼. 그놈의 세일이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쁘지 않은 가격에 산거였거든. 그러나. 아뿔싸 세일품목은 환불이 안된단다. 교환만 된단다. 다행히 백화점 아닌가. 아무매장에서나 같은 가격으로 교환 된다니 뭐… 돌아다녀 보지… 하고 다음날 날잡고 찬찬히 둘러보는데, 뭐이리 살게 없나. 평소에 필요했던것도 없고 사고싶은것도 없고 참내. 아 물론 사고 싶은 칼이 있긴 했는데 그건 인터넷으로 사는거랑 너무 가격차이가 심하게 나서 다른걸 사려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살게 없다.

물론 전혀 없다는건 아니지만 아아아 이거다 싶은게 없어서 그냥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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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며칠전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재밌는 글이 생각났다.

‘a rich person is not one who has the most, but is one who needs the least.’

아아아.

난 이미 부자구나. 뭐 이리 필요한게 없어.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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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하고 있는 가게의 시그니처 디쉬. 이건 진짜 예술이다. 감탄 또 감탄.

일단 보기에 예술이고, 맛이 좋은건 물론이며 (맛에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것 같긴 하더라만 난 좋다) 상징성도 ‘만다린’ 아닌가!

헤스톤의 이미지를 엄청 풍기면서 호텔의 이미지도 잘 버무렸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중시하는 부분인데 미리 준비만 잘 해 두면 실제 플레이팅 하는데 시간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게 또 엄청난 매력.

이정도면 이거 하나로도 웬만한 레스토랑을 살릴정도의 메뉴가 아닌가 싶다.

괜히 세계 최고의 요리사가 아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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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테스팅에서 찾았다.

사진조절도 되고 드래프트도 되는구나. 아 좋아. 아직까지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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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니(?) 님께서 식당밥 올린거 보고 나도 올려봐야지… 하고 찍어둔 사진. 테스트 삼아 올려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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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이폰용 워드프레스 앱으로 올린 포스팅을 맥북에서 수정중인데

일단 사진크기가 너무 크게 올라간다. -_-;;

그리고 난 일단 드래프트만 해놓고 올리는건 집에와서 올리고싶은데 그게 안되나보다.

좀더 들여다 봐야지.

나는 방안에서 고양이를 두마리 키운다. 출근할때는 고양이들이 하루종일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만 있으면 갑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문을 살짝 열어놓는데 말그대로 살짝만 열어둔다. 약 10cm 정도로.

그정도면 고양이들이 지나다니는데 필요한 최소의 틈인듯 하다.

물론 그보다 조금 열어두면 자기들이 앞발로 문을 열고 다니는데 그럼 더 활짝 열리기에 사람들이 오며가며 방이 들여다 보여지는것 같아서 내가 알아서 최소의 틈만 열어두고 산다. 고양이들이 약간 스치듯이 다닐 정도로.

헌데 고양이들은 그정도에 그닥 불편을 느끼지 않는 듯 하다. 옆구리를 살짝 스칠 정도의 공간정도만 주어도 더이상 문을 열지 않는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것이겠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지않은가. 사실 사람도 문이 어깨폭보다 약간만 넓게 열려 있다고 드나드는데 문제가 있는건 아니다. 하지만 문이 그정도 열려있다면 누구나 문을 더 열고 넓직하게 다닌다. 물리적인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는거다.

물론 군대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주어진다면 인간도 역시 고양이처럼 최소한의 물리적인 공간만 가지고 삶을 이어나갈 수 는 있더라. 머리끝과 발끝에 닿는정도의 매트리스에서 2년 2개월을 살아보니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건 몸소 깨우쳤다. 사실 싱글침대도 군대시절에 주어졌던 매트리스에 비하면 매우 넓직한 편이다.

그럼 사람은 왜 자신의 몸뚱이보다 더 큰 공간을 필요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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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만에 학교다닐때 했던 프로젝트가 생각나서 몇자 적어봤다.

석사때 잠깐 고민하던것이 나의 인생에 걸친 큰 테마가 되었다.

사람과 문 사이의 그 공간만큼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은거다.

학교다닐때 강의실로 들어가는 복도에 설치한것. 사람의 크기보다 약간 큰 구멍만 있는 복도. 막혀버린 우회로.

 

대학 점퍼, 너는 왜 입니? – 시사IN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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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십년쯤 됐을까.

예전 여친의 언니랑 같이 밥먹고 놀았는데 나중에 안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니 남자친구 왜 고대티 입고 다니냐는거다.

 

변명을 좀 하자면 웃기지만

 

동생이 고대를 나왔다. 영문으로 Korea University.

그냥 옷장에서 동생이랑 옷을 막 같이 입던 시절이었고 그날 그게 우연히 집혔을 뿐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빨간 후드티에 하얀 글씨들.

지금이나 그때나 난 좀 무식해서 그게 그런 어마어마한 상징성이 있다는걸 몰랐다.

그도 그럴것이 그때당시의 여자친구는 언니는 고대, 여친은 연대 그리고 막내는 서울대.

오오 말그대로 sky 집안이었구나.

그에반해 나는 지방에 이름도 없는 전문대, 그러니까 딱 지잡대 그 자체였거든. ㅎ

그 사실을 알고있던 전여친의 언니분은 나중에 그거가지고 안좋은 시선을 보냈었단다. 나도참 둔하기도 하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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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 라는 말도 유치한걸 떠나서 뭐랄까 지저분하게 들리는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이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어느정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리고 그런 행동도 스스로 조심하겠지만

그때당시는 어찌나 그 상황이 웃기던지.

물론 공부같은거 잘 못해서 명문대 갈 능력도 안됐지만 그닥 가고싶지도 않았고 또 그런거 앞세우는 애들이 그나이에도 얼마나 한심해 보이던 나였는데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다니.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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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조선일보랑 동아일보를 재단으로 두고있는 학교 학생들. 당신들이 노력해서 거기 들어갔고, 또 그거에 관해서 자부심 가지는것에 대해 뭐라고 할 마음은 없지만. 그게 그렇게 멋져보이는 사회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물론 자격지심에서 온거라 하시면 굳이 반박하진 않겠지만 저도 나름 그후 학력을 쌓다보니 더더욱 학력의 부질없음을 느끼는 계기만 되더라구요.

물론 그당시 제 병신짓은 인정 합니다만 그건 별개의 문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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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민주화 운동하던 80년대의 대학생들에 비하면

2000년대의 대학생들은 이미 너무많이 이 사회에 길들여 진것같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어쩌겠어. 극복해야지.

http://koln.egloos.com/tb/5620997

via 인생은 사막, 술은 꽃 : 저는 짜게 먹습니다..

요새 동현이 글 읽다가 부쩍 코멘트를 달고 싶은 충동이 늘었는데

오늘은 심지어 트랙백.

생각하는게 비슷하다는게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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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여자친구랑 이야기 하다가 싱겁게 먹는다, 짜게 먹는다가 얼마나 웃긴건지 생각해 봤는데.

아주 간단하더라.

 

라면 한봉지를 끓여서 국물까지 다 먹는다고 치자.

한명은 물을 반만 넣고 짜게 먹고

한명은 한강을 만들어서 싱겁게 먹는다면

누가 더 건강하게 먹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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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소금 섭취량은 결국 같은거 아냐?

그럼 소식이 정답인가. ㅋㅋㅋㅋ

 

이것에 관해서 아직도 할말 많지만 내일 출근하는 관계로 오늘은 이만.

조금 추상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치자.

아니 그래 그러니까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땄다면야 어느정도 ‘최고’ 의 자리에 올랐다고 칠 수 있겠지만 모든일들이 그렇게 정의내려지기는 힘든거니까. 더군다나 디자인, 예술 분야에서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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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one top 이든 best 던간에 상위 몇퍼센트 안에 들었다고 쳐보자.

이 사람들은 재능도 있었을것이고, 노력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계 최고란게 꼭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론 당연한 일인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더라.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을 극한까지 추구하더라도 배고픈 경우가 많지 않는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고호의 인기를 생각해 본다면 그가 살아생전 죽어라 가난하고 방값걱정을 하며 살아야 했던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꼭 이렇게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아도 샤넬이나 루이비통같은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집단들은 자기돈 퍼부어 가며 패션쇼를 하고 그돈을 벌기 위해 향수와 스카프를 판다. 이것도 역시 극단적이라고? 그럼 이건 어떤가. 몇해동안이나 온 세상 사람들이 입을모아 찬양하던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엘불리는 결국 재정난과 기타의 이유로 잠정 휴업에 들어간상태고, 피에르 가니에르, 고든 람지는 벌써 이름을 걸고 연 레스토랑이 몇개인가. 헤스톤 블루멘탈도 결국 런던의 호텔체인에 가게를 낸지 1년이다. 살길을 찾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라 살길을 따로 또 찾아야만 한다는거다.

물론 그자신들이 자신의 가게 하나만 가지고 생활이 안될정도로 어렵다는건 아니다. 하지만 세계 최고에게걸맞는 대우는 분명 아닐것이다. 게다가 그 세계 최고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을 생각한다면 다른데서 돈을 벌어서 명성유지에 쏟아 붓는게 그닥 이상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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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최고가 되는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의 인생이 그렇게 빡빡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 궁시렁 대는건 되게 찌질해 보이긴 하지만. 어쩌겠냐 나의 인생 90% 정도면 적당한 것을.

완벽을 추구하고 최고를 추구하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라
그런사람도 있고
나같이 90%에서 만족하는 사람도 있다는거다.

어릴적부터 겨울이 되면 베란다에 거대한 솥에는 식혜가 한가득 했다.
가끔 빨래나 삶는 용도로 사용하는, 집에 있는 솥중에 가장 큰 솥에.

그 기억이 좋아서 나는 영국에 온지 몇해가 되도록 혼자 식혜를 종종 해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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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를 처음 할때는 보통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레서피 덕에 어마어마한 양의 설탕을 집어넣고는 죄책감에 사로잡힐때가 있다. 아아아 이거 과연 정말 설탕을 이만큼이나 넣어야 하는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도그럴것이 우리 입맛은 이미 그정도의 단맛에 익숙해져 버렸거든. 게다가 단맛이란게 차가우면 더 약하게 느껴지기에 끓이는 동안에 많이 달아봐야 차갑게 식히면 또 그닥 달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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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는 어떻게 먹게 되었을까.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어느정도 이해할텐데 아마도 사람은 원초적으로 ‘단맛’ 에 대한 욕구가 어느정도 있는 모양이다. 심리적으로 단걸 먹지 않으면 우울하다거나 혹은 포도당이 뇌세포의 유일한 에너지원이다 라거나, 뭐 이런 리서치나 연구를 다 떠나서 단맛은 매우 일차원 적인 맛이다. 개중에는 단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긴 있지만 적어도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이 단것에 쉽게 흥미를 느끼는것 만 봐도 참 접근하기 쉬운 맛이라는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식혜를 처음 만들어 먹던 그시절에는 설탕이 흔하지 않아 단맛을 쉽게 접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쌀을 발효시켰을때 단맛이 나온다는걸 발견하고 그렇게 식혜를 만들어 단맛의 욕구를 어느정도 충족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식혜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쌀만 발효를 잘 시켜도 꽤 달다. 하지만 이미 현대인들의 입맛은 단맛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높아져 있고 그래서 설탕을 ‘듬뿍’ 넣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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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어떤게 식혜의 맛 일까. 설탕을 넣지 않고 내가 추정하는 옛날의 그 맛 일까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춘 조금 더 단 그맛일까.

이게 요즘의 고민거리이다.

난 아무래도 한국입맛이 아직 남아 있는데다, 나중에 한국에서 장사를 해보고 싶기에 어느정도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고 싶은데 그렇다고 설탕이 왕창 들어간 식혜가 정답이냐… 그건 또 아닌것 같거든.

고민이다.

믿고싶은것만 보고, 들린단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경우는 너무나도 많이 접하게 되어 이젠 더이상 놀랍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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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한국에서 유행하던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 이란 책에서 읽은 내용이 있다.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어떤 내용이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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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사람이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과 가족 모든 사람들이 당신은 아직 멀쩡히 살아있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하여도 그사람은 자신이 죽어있다고 믿는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의사에게 데려가 보여줬다.

의사는 그의팔에 칼로 상처를 내고는

‘보세요 피가나지요? 죽은자는 피를 흘리지 않아요.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라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왈

‘오 의사선생님! 죽은 사람도 피를 흘릴 수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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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사실도, 근거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나의 모습도 저럴때가 있을까 되돌아 본다.